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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심각한 오해: 진성도반의 임무 - 윤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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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운영자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2,144회   작성일Date 21-09-1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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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심각한 오해:
    길은 돌아올 수 있을 때만 제대로 종결된다
    진성리더십 아카데미에서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을 '진성도반'이라고 칭하고 있다. 진성리더십 아카데미에서 도반이란 진북(True North)를 찾아 같이 길을 가는 길동무를 의미한다.
    진성도반들은 변화가 심각한 시대에 살아갈수록 삶의 본질이 길잃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삶의 본질이 길잃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진북을 다시 찾아내는 나침반을 하나씩 준비하고 길을 떠난다. 나침반을 품고 길을 떠나는 진성도반의 여정과 일반 사람들이 여정은 무엇이 다르고 결과적으로 어떤 차이를 가져올까?
    길의 진정한 의미에 관해서 통찰력을 주는 세 편의 시가 있다. 첫째 시는 길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Frost 1874~1963)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고 두번째, 세번째 시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 길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길을 잃은 체험을 묘사한 윤동주(1917~1945)의 시 "새로운 길"과 "길"이다.
    이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시가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다. 사람들은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지 길의 비밀을 풀어보자.
    ===================
    가지 않은 길: 프로스트
    ===================
    노란 숲 속에 길이 둘로 갈라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두 길을 한꺼번에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여행자이기에, 오랫동안 서있었다,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구부러지는 데까지
    눈 닿는 데까지 멀리 굽어보면서;
    그리고 다른 한 길을 택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좋은 이유가 있는 길을,
    풀이 우거지고 별로 닳지 않았기에;
    그 점을 말하자면, 발자취로 닳은 건
    두 길이 사실 비슷했지만,
    그리고 그 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아직 밟혀 더럽혀지지 않은 낙엽에 묻혀있었다.
    아, 나는 첫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두었다!
    길은 계속 길로 이어지는 것을 알기에
    내가 과연 여기 돌아올지 의심하면서도.
    어디에선가 먼 먼 훗날
    나는 한숨 쉬며 이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걸은 길을 택했다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사람들은 이 시를 해석할 때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해야 한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해 회한을 품고 인생을 마무리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길이란 자신의 일인칭 주체가 담겨진 동사형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 길을 택하면 다른 길을 포기하는 기회비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두 길을 다 갈 수 있는 사람은 일인칭 주체를 포기하고 삼인칭 주체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길을 주체적으로 선택해서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맞는 이야기지만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의 의미를 여기까지 해석하는 것은 프로스트에 대한 지나친 왜곡이다. 프로스트에게 가지 않은 길은 선택을 위해 제시되기도 했지만 자신이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야 할 길에 대한 우려를 표현한 시다.
    나는 첫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두었다!
    길은 계속 길로 이어지는 것을 알기에
    내가 과연 여기 돌아올지 의심하면서도.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에서 다른 길은 시작의 길이기도 하지만 여행을 끝내고 돌아올 길이기도 하다. 하나가 선택한 길이라면 나머지 하나는 필연의 길이다. 길을 가는 도중 길을 잃은 상황이 발생해서 헤메게되면 결국 돌아와야 할 길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삶을 살 수 있다. 프로스트가 한 길을 시작하는 길로 선택해 여정을 시작할 때 가장 큰 우려가 이것이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자신이 돌아와야 할 길임에도 중간에 길을 잃어 결국은 찾지 못할 운명에 처한 길이다. 이 길을 마지막으로 마음 속에 다시 새겨두려는 심경을 묘하한 것이다.
    길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프로스트의 우려처럼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고 반드시 길을 잃는다.
    윤동주는 실제 길을 떠난 사람들의 길의 체험를 "새로운 길"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윤동주는 통상 왜 우리가 길을 잃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
    새로운 길: 윤동주
    ===========================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윤동주에게 길에 대한 체험은 시간에 대한 발견이다. 우리는 길을 걸어가며 공간만 기억하지만 실제 모든 길은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시간의 씨줄로 연결되어 있다. 공간의 날줄로만 보면 같은 길이지만 길은 시간의 씨줄과 공간의 날줄이 짜여져 만든 새로운 피륙이다. 같은 공간을 걷는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다른 길이다. 이 길에 어제는 까치가 날고, 오늘은 아가씨가 지나가고, 내일은 바람이 인다. 삶은 반복되는 공간의 길처럼 보이지만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길은 오래된 새길로 다시 등장한다.
    윤동주의 '길'은 길을 공간과 시간의 피륙이라는 사실을 깨달지 못할 때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길을 잃은다는 것을 경고한다.
    ====================
    길: 윤동주
    ====================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윤동주에게 길은 공간과 시간을 피륙해 만들어낸 새로운 내러티브다. 길에 대한 체험을 공간의 체험으로 끝내고 시간의 체험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길을 잃는다. 그 이유를 서시 "별을 헤는 밤"에서 다음처럼 설명하고 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사람들은 밤이 되면 별(나침반)을 마음 속에 담아두지만 새벽이 오고 날이 밝으면 햇빛에 취해 자신의 마음 속 나침반을 잃어버린다. 또 밤이 오면 나침반을 찾지만 날이 밝으면 잃어버리는 일을 반복한다. 결국 반복되는 삶의 쳇바퀴 속에서 첫날 밤 나침반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산다.
    왜 길을 잃었는지는 모르지만 길을 잃은 아픔을 견딜 수 없어서 병원을 찾지만 늙은 의사는 병명을 모른다. 윤동주의 시 "병원"에 이 환자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윤동주의 필연적으로 길잃은 병자에 대한 처방은 스캇 팩(Scott Peck: 1935~)이 "가야만 하는 길(Road Less Traveled)"이라는 책에서 제시하고 있다. 팩의 가야만 하는 길은 프로스트와 윤동주가 우려했던 길잃음과 환자됨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다. 환자들에게 팩은 프로스트의 두 길은 시작할 길과 돌아와야 할 길이고 이 두 길은 원래부터 연결된 길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병이 낮는 것은 남겨두었던 나머지 길로 귀환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팩은 가장 모범적인 지표의 삶을 살았던 정신과 의사이다. 팩은 길은 "지금 걷고 있는 길"과 "가야만 하는 길" 두 개가 존재하는데 길을 잃는 이유는 첫번째 길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길의 종착역에 도달했다고 믿을 때라고 설명한다. 첫번째 길은 모든 사람들이 걷고 있는 자기실현의 길이고 두번째의 길은 자아실현에서 얻은 보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타아실현의 길이다. 첫번째 길은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이지만 두번째 길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이다.
    팩은 첫번째 길이 두번째 길로 연결되어 뫼비어스의 띠를 완성한다고 본다. 길은 자아실현과 타아실현이라는 길이 연결되어 결국 두 바퀴를 다 완성할 때 원점으로 돌아온다고 보았다. 뫼비어스의 띠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은 길을 잃고 자아실현에만 몰두하다 두번째 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죽기 직전 프로스트가 우려한 일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는다. 프로스트가 우려했던 일이 자신에게도 현실이 되었음을 뒤늦게 깨닫지만 이미 늦었다.
    진성리더십 도반들이 길을 잃지 않는 이유는 마음 속에 자신만의 목적의 나침반 하나씩을 가지고 길 잃음이 본질인 삶의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목적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길을 잃은 지점인 자아실현의 길과 타아실현의 길이 교차되어 이어지는 지점에 서 있는 이정표이다. 진성도반이란 햇빛이 떠도 마음 속의 나침반이 길을 찾아주는대로 자아실현을 넘어서 자신과 같은 문제 때문에 고통받는 동네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들의 아픔을 해결하는 타아실현을 위해 길을 돌아오는 회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고향에 돌아와 임종을 맞이 하는 순간에 자신이 간직했던 나침반을 유산이자 바통으로 후세에게 남겨주는 사람들이 진성리더십의 도반이다.
    연어가 자신의 종족을 남기기 위해 고향으로 회귀하는 삶을 산다면 진성도반들은 자신의 목적에 대한 약속을 실현시킨 결과물인 유산(legacy)를 통해 같은 문제로 고통받는 도반을 치유하고 살려내는 사명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들이 진짜 영웅인 이유는 자아실현을 통해 자신을 구해냈을 뿐 아니라 타아실현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고통를 받는 사람들도 살려냈기 때문이다.
    캠벨에서 영웅의 여정은 통해 자신을 구하는 완수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비슷한 문제로 고통을 받는 타자를 살려해냈을 때 종결된다. 진성도반은 자신에게 맡겨진 영웅의 여행의 소임을 완수하기 위해 오늘도 나침반을 봐가며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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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 뫼비어스의 띠는 시작점을 따라 두 바퀴를 회전시키면 원점에서 만나는 삶의 회귀의 법칙을 잘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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