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있는 한 희망은 이어진다: 노마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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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있는 한 희망은 이어진다
노마드랜드
꼭 보고 싶었던 영화를 드디어 보는 호사를 누렸다. 노마드랜드다. 이 영화를 반드시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제목이다. 노마드면 노마드일 것이지 왜 거기에 랜드를 붙였는지에 강한 호기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결국 오늘 영화를 보고 랜드가 붙은 이유를 해독해냈다.
둘째는 미나리도 노마드랜드도 결국 이주와 여행하는 삶에 대한 영화인데 어떻게 노마드랜드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작품상, 황금사자상을 비롯해 감독상 55관왕, 각색상 20관왕, 편집상 11관왕 등 통산 86관왕이라는 알려진 최고 상을 싹쓸이 했는지가 궁금했다. 한국 이민자 감독과 중국 이민자 감독이 비슷한 노마드 주제를 놓고 대결하는 세계관에 대한 차이가 무엇이길래 이런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는지가 궁금했다.
마지막 이유는 노마드라는 개념 때문이다. 요즈음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북 클럽에서 들뢰즈 <천의 고원>과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을 읽고 있는데 여기서 세계관을 확장하는 매카지즘으로 제시된 개념이 노마드다. 이 영화에는 노마드의 여정이 삶을 어떤 식으로 확장시키는지가 궁금했다.
주인공은 광산 마을이던 네바다 주 엠파이어라는 도시에 있는 광물을 이용한 석고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다녔다. 영화 여기 저기에 돌에 관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회사가 문을 닫기까지 HR 담당자로 일하기도 했고 퇴직 후에는 학교의 파트타임 선생님으로도 일했다. 미국이 치켜세우는 전형적 중산층이다. 경기 침체로 회사가 문을 닫고 남편도 암으로 사망했다. 우편번호가 사라질 정도로 마을 전체가 일자리와 삶을 찾아 디아스포라를 떠났다. 결국 주인공도 생계 때문에 마을을 떠나 밴을 몰아가며 유랑 생활을 시작한다.
랜드가 붙은 이유는 길 위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제도적 안전망이 작동하지 않는 세상에서도 신실한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에 대한 환대가 생성된다는 의미다. 영화에서 노마드 여행자들은 서로를 혼자 놔두지 않고 서로에게 울타리(랜드)가 되어 환대한다. 첫째 이 랜드 안에서 이들은 남을 착취하지 않는다. 둘째, 이 랜드 안에서 이들은 삶의 지혜와 경험이 있어서 남에게 쉽게 착취 당하지도 않는다. 셋째, 이들은 이 랜드를 통해 삶은 결국 왔다가 떠나 가야 하는 노마드라는 정체성을 발견한다. 길을 떠나기 위해 헤여져도 언젠가는 서로가 다시 만날 (심지어는 천국에서라도) 친구라는 사실에 대한 굳은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서로를 환대한다. 국가가 책임을 안 지어도 사람들은 나름의 공동체를 만들고 서로가 서로를 지지해가며 희망을 구가하고 있었다.
이들은 도시 정착민들이 천박하다고 욕하는 뜨내기가 아니었다. 이들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랜드(공동체)를 만들어 가며 길 위에서 집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친구없이는 살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들이 만들어 가는 공동체 삶을 상징하는 장면이 있다. 이들은 밤이면 모닥불 주위에 모여서 과거 아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내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상황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이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이 영화는 코맥 매카시의 원작 소설을 엔 형제 감독이 영화로 각색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를 연상하게 한다. 이 영화는 노마드랜드와 정 반대되는 메시지를 전한다. 농경시대 노인'들은 지혜를 가진 현명한 생각의 소유자로 대접 받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변화가 상수가 된 세상에서 노인이란 각종 쇠락과 시달림의 대상이다. 삶에 통제권을 잃은 이들 삶은 어느 날 우연에 의해 송두리째 바뀌고, 각종 악몽에 시달리고, 쉬운 보이스피싱 범죄 대상이 된다. 노인은 더 이상 농경 시절 지혜를 뽐내던 어른이 아니다. 이 영화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표류하는 노인들의 부조리한 삶을 비극적으로 그렸다. 노마드랜드는 노인들에게 닥친 혼돈의 세상도 존재하지만 여행자의 정체성을 가진 노인들은 자신들만의 또 다른 지혜와 환대의 마을을 생성하는데 성공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주제가 우리나라에도 한 때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노인 드라마 <Dear My Friends>와 비슷해 보이지만 접근 방식이 다르다. 이 드라마처럼 노인들은 질질 짜고 싸우고 화해하지 않는다. 노마드랜드의 노마드들은 죽음을 향해 담담하게 여행을 완수하는 동반자들이다. Dear My Friends에는 윤여정도 출연했었다.
미국의 노인들은 서유럽의 노인들과는 달리 국가가 연금으로 돌보기를 방기한 불행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연금으로 집세를 내거나 아니면 집 대출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 집을 포기했다. 이들은 한 때 중산층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회사와 사회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땀을 흘렸다. 지금의 처지가 되었어도 국가를 탓하지도 않는 순둥이들이다.
이들에게 가장 좋은 일자리는 아이러니하게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물량이 많이 밀리는 연말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이들을 계절 노동자로 고용하고 계절이 끝나면 해고한다. 아마존이 이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들은 평생 중산층에 대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순응해가며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반항심이 철철 넘치는 젊은 뱅가드가 아니다. 그냥 해고하면 해고에 순응한다. 해고를 당해도 그나마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임금을 보장해 준 아마존에 대해 고마워한다.
미나리가 이민 노마드의 가족 서사를 그리고 있다면 노마드랜드는 디지털 플랫폼 시대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몰락한 미국 노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두 영화 모두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노마드랜드에서 희망은 혈연적 가족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피어난 희망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노마드 여정에 합류한 과거의 아픔을 지닌 모든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형성한 공동체에서 서로를 환대하는 희망의 씨앗을 뿌린다.
이 두 영화는 스케일과 추구하는 철학적 수준이 다르다. 미나리에서 희망은 집이 불타 사라지는 짐에도 아직 젊은 손자들이 살아 있음과 이들을 통해 혈통적 생명이 연장될 것에 대한 희망이다. 반대로 노마드랜드에서 노래하는 희망은 암울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서로의 등을 지켜주는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이 희망의 공동체를 통해 죽음이라는 절대적 타자와의 장엄한 화해도 성사될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희망이다.
초반부 빠른 박자에 승부를 거는 미국 할리우드 스타일 영화와는 달리 롱테이크 기법으로 찍었다. 모든 장면이 우리가 세상을 보는 것보다 느리게 흐른다. 결국 이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이용해 아름다운 경치도 보고 좋은 음악도 들으면서 삶의 마지막 노마드 여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다. 이 영화가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여우주연상, 황금사자상을 모든 가져간 이유를 알았다.
노마드랜드
꼭 보고 싶었던 영화를 드디어 보는 호사를 누렸다. 노마드랜드다. 이 영화를 반드시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제목이다. 노마드면 노마드일 것이지 왜 거기에 랜드를 붙였는지에 강한 호기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 결국 오늘 영화를 보고 랜드가 붙은 이유를 해독해냈다.
둘째는 미나리도 노마드랜드도 결국 이주와 여행하는 삶에 대한 영화인데 어떻게 노마드랜드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작품상, 황금사자상을 비롯해 감독상 55관왕, 각색상 20관왕, 편집상 11관왕 등 통산 86관왕이라는 알려진 최고 상을 싹쓸이 했는지가 궁금했다. 한국 이민자 감독과 중국 이민자 감독이 비슷한 노마드 주제를 놓고 대결하는 세계관에 대한 차이가 무엇이길래 이런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는지가 궁금했다.
마지막 이유는 노마드라는 개념 때문이다. 요즈음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북 클럽에서 들뢰즈 <천의 고원>과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을 읽고 있는데 여기서 세계관을 확장하는 매카지즘으로 제시된 개념이 노마드다. 이 영화에는 노마드의 여정이 삶을 어떤 식으로 확장시키는지가 궁금했다.
주인공은 광산 마을이던 네바다 주 엠파이어라는 도시에 있는 광물을 이용한 석고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다녔다. 영화 여기 저기에 돌에 관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회사가 문을 닫기까지 HR 담당자로 일하기도 했고 퇴직 후에는 학교의 파트타임 선생님으로도 일했다. 미국이 치켜세우는 전형적 중산층이다. 경기 침체로 회사가 문을 닫고 남편도 암으로 사망했다. 우편번호가 사라질 정도로 마을 전체가 일자리와 삶을 찾아 디아스포라를 떠났다. 결국 주인공도 생계 때문에 마을을 떠나 밴을 몰아가며 유랑 생활을 시작한다.
랜드가 붙은 이유는 길 위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제도적 안전망이 작동하지 않는 세상에서도 신실한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에 대한 환대가 생성된다는 의미다. 영화에서 노마드 여행자들은 서로를 혼자 놔두지 않고 서로에게 울타리(랜드)가 되어 환대한다. 첫째 이 랜드 안에서 이들은 남을 착취하지 않는다. 둘째, 이 랜드 안에서 이들은 삶의 지혜와 경험이 있어서 남에게 쉽게 착취 당하지도 않는다. 셋째, 이들은 이 랜드를 통해 삶은 결국 왔다가 떠나 가야 하는 노마드라는 정체성을 발견한다. 길을 떠나기 위해 헤여져도 언젠가는 서로가 다시 만날 (심지어는 천국에서라도) 친구라는 사실에 대한 굳은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서로를 환대한다. 국가가 책임을 안 지어도 사람들은 나름의 공동체를 만들고 서로가 서로를 지지해가며 희망을 구가하고 있었다.
이들은 도시 정착민들이 천박하다고 욕하는 뜨내기가 아니었다. 이들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랜드(공동체)를 만들어 가며 길 위에서 집 없이도 살 수 있지만 친구없이는 살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들이 만들어 가는 공동체 삶을 상징하는 장면이 있다. 이들은 밤이면 모닥불 주위에 모여서 과거 아픔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내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상황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이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이 영화는 코맥 매카시의 원작 소설을 엔 형제 감독이 영화로 각색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를 연상하게 한다. 이 영화는 노마드랜드와 정 반대되는 메시지를 전한다. 농경시대 노인'들은 지혜를 가진 현명한 생각의 소유자로 대접 받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변화가 상수가 된 세상에서 노인이란 각종 쇠락과 시달림의 대상이다. 삶에 통제권을 잃은 이들 삶은 어느 날 우연에 의해 송두리째 바뀌고, 각종 악몽에 시달리고, 쉬운 보이스피싱 범죄 대상이 된다. 노인은 더 이상 농경 시절 지혜를 뽐내던 어른이 아니다. 이 영화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표류하는 노인들의 부조리한 삶을 비극적으로 그렸다. 노마드랜드는 노인들에게 닥친 혼돈의 세상도 존재하지만 여행자의 정체성을 가진 노인들은 자신들만의 또 다른 지혜와 환대의 마을을 생성하는데 성공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주제가 우리나라에도 한 때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노인 드라마 <Dear My Friends>와 비슷해 보이지만 접근 방식이 다르다. 이 드라마처럼 노인들은 질질 짜고 싸우고 화해하지 않는다. 노마드랜드의 노마드들은 죽음을 향해 담담하게 여행을 완수하는 동반자들이다. Dear My Friends에는 윤여정도 출연했었다.
미국의 노인들은 서유럽의 노인들과는 달리 국가가 연금으로 돌보기를 방기한 불행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연금으로 집세를 내거나 아니면 집 대출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 집을 포기했다. 이들은 한 때 중산층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회사와 사회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땀을 흘렸다. 지금의 처지가 되었어도 국가를 탓하지도 않는 순둥이들이다.
이들에게 가장 좋은 일자리는 아이러니하게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물량이 많이 밀리는 연말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이들을 계절 노동자로 고용하고 계절이 끝나면 해고한다. 아마존이 이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들은 평생 중산층에 대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순응해가며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반항심이 철철 넘치는 젊은 뱅가드가 아니다. 그냥 해고하면 해고에 순응한다. 해고를 당해도 그나마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임금을 보장해 준 아마존에 대해 고마워한다.
미나리가 이민 노마드의 가족 서사를 그리고 있다면 노마드랜드는 디지털 플랫폼 시대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몰락한 미국 노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두 영화 모두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노마드랜드에서 희망은 혈연적 가족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피어난 희망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노마드 여정에 합류한 과거의 아픔을 지닌 모든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형성한 공동체에서 서로를 환대하는 희망의 씨앗을 뿌린다.
이 두 영화는 스케일과 추구하는 철학적 수준이 다르다. 미나리에서 희망은 집이 불타 사라지는 짐에도 아직 젊은 손자들이 살아 있음과 이들을 통해 혈통적 생명이 연장될 것에 대한 희망이다. 반대로 노마드랜드에서 노래하는 희망은 암울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서로의 등을 지켜주는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이 희망의 공동체를 통해 죽음이라는 절대적 타자와의 장엄한 화해도 성사될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희망이다.
초반부 빠른 박자에 승부를 거는 미국 할리우드 스타일 영화와는 달리 롱테이크 기법으로 찍었다. 모든 장면이 우리가 세상을 보는 것보다 느리게 흐른다. 결국 이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이용해 아름다운 경치도 보고 좋은 음악도 들으면서 삶의 마지막 노마드 여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다. 이 영화가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여우주연상, 황금사자상을 모든 가져간 이유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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