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배려가 위험한 이유: 레비나스의 타자철학 -윤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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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지사지 배려가 위험한 이유:
레비나스의 타자철학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학습공동체 소크라테스 책읽기에서 도반들과 같이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을 읽고 있다. 레비나스는 타인을 자아와 같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정신모형을 강요하는 것이 바로 타인에 대한 전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황금율로 생각하고 있는 역지사지도 레비나스의 입장에서 보면 아래처럼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역지사지란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때 이해된 다른 사람의 고통은 자신이 자신 상황에 근거해서 파악한 고통이지 상대가 가진 고통 자체는 아니다. 결국 나와 상태가 같다는 동일성에 근거한 타자의 이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의 노나라 새에 관한 사례는 동일성을 역지사지로 포장할 때 어떤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옛날 바닷새 한 마리가 노(魯)나라 교외에 내려앉았다. 노나라 군주는 이 새를 맞이하여 종묘에서 술을 베풀고 순임금의 음악인 구소를 연주하여 즐겁게 하며, 소·돼지·양을 잡아 대접하였다. 그러자 새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근심에 잠겨 한 점의 고기도 먹지 못하고 한 모금의 술도 마시지 못하다가 삼일 만에 죽고 말았다.
새가 죽은 이유는 노나라 군주는 자신을 보양하는 동일성의 방식으로 새를 보양했지 새의 입장이 되어서 새를 보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의 고통에 대해서 내가 이해한 바를 역지사지란 이름으로 실행한 것이다. 사례는 자신을 버리고 상대의 고통 속으로 한 번도 들어가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베푸는 역지사지 배려가 위험한 이유를 잘 비유하고 있다.
고통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은 오랫동안 세상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마음의 문을 안으로부터 잠군 사람들이다. 밖에서 아무리 수 많은 열쇠를 시도해봐도 안에서 열어주지 않는다면 이 사람 마음으로 들어가 이들의 고통을 덜어낼 수 없다. 타자는 내 정신모형에 의한 이해를 벗어나 저만큼 달아나 있다. 타자와 주체와는 물리적 거리만큼 절대적 거리가 존재한다.
배려할 수 있다는 우월감으로 자신의 열쇠로 일방적으로 문을 따고 들어가는 행동보다는 마음의 문을 조용히 두드려주고 상대가 문을 열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는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 진정한 환대다.
참다운 배려는 상대의 입장을 역지사지로 추론해서 행동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을 버리고 상대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 상처받을 용기에서 시작된다.
같이 상처 받을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진정한 환대는 처음부터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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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f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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