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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의 본질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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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johnq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1,414회   작성일Date 22-04-11 08:57

    본문

    학교의 본질은 무엇일까?
    실패의 연습장

    #일원학습 #이원학습 #삼원학습
    #심리적_안정지대

    학교의 본질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지식을 즉 올바른 답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대부분 학교의 커리큘럼도 이런 개념을 기반으로 짜여졌다. 학생들은 선생님이나 교과서에 나온 답을 공부해서 실수하지 않고 교과서를 보지 않고 답안지에 옮겨 놓을 수 있는 능력으로 공부 잘하는 능력을 평가 당해왔다.  학원은 한 술 더 뜬다. 학원의 목표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못하는 실수하지 않고 답을 옮겨 적는 고난도의 기술을 가르쳐 준다. 이렇게 해서 수능에서 최고점을 얻은 학생들을 인터뷰하면 스토리가 비슷하다. "교과서와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수업에 충실하게 임해서 공부했어요."

    학습의 수준은 답이 정해져 있다는 가정하에 실수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가장 초보적 학습인 일원학습, 자신의 실수를 피드백해서 실수의 기반인 잘못된 가정을 고치는 이원학습, 자신의 미래와 과거를 직조해서 새로운 현실의 지평을 만들어가는 "학습하는 죄인"이라는 관점의 삼원학습으로 나눠지는데 지금의 학교는 가장 초보적인 실수하지 않는 요령을 가르치는 일원학습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실수하지 않고 답안을 옮겨쓰는 훈련만을 받고 졸업했는데 이렇게 해서 습득한 지식이 전혀 작동이 안 되는 다른 세상이 전개되고 있다면 어떻까?

    지금 취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젊은이들의 현실이다. 실제 이런 상황이 전개되면 대부분 졸업생들은 맨붕에 빠져 스스로 도태될 것이다. 이들이 맨붕이 빠져 무기력하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면 이 문제는 누구의 책임일까?

    이런 상황에 대해 회사는 어떻게 대처할까?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일을 시킬 사람이 없다고 불평할 것이다. 지금 대학에서 가르켜주는 방식을 염두에 둔다면 일머리와 공부머리는 반대방향으로 흐른다. 인사담당자의 불만은 대학의 현실과 커리큘럼을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다. 매일이 새로운 회사의 이원학습 삼원학습 문제를 실용적이고 창조적으로 해결할 능력을 완전하게 거세시킨 정도인 일원학습의 정점을 찍고 있는 좋은 학벌에서 좋은 성적을 냈다는 명목으로 채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회사가 대처하는 방식도 실용적이거나 창의적이지 않다. 회사는 다음과 같은 가정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학생들이 문제해결 능력이 없으니 모든 조건이 같다면 좋은 학교에서도 공부도 잘 한 학생을 일단 뽑자. 이들은 모든 것이 똑 같다면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도 "성실하게" 답을 잘 낼 것이다. 회사의 대응방식도 일원학습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자신들의 일원학습 가정이 잘못되었음 깨달은 회사들이 이원학습 수준으로 채용의 관점을 바꾸고 있다. 특히 실용주의적 기조를 따르는 회사들이 제일 먼저 이런 가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학벌 중심으로 직원을 채용하려는 공채 경향을 벗어나 팀 단위와 사업단위에서 수시채용으로 채용을 전환했다. 가장 현실적인 채용에 관한 실용적인 시험문제를 낼 수 있는 단위가 현업단위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원학습에 바탕을 둔 채용경향에 비교적 무관심한 회사들은 금융권 회사들이다. 실수와 리스크에 대해 과민하게 대처해야 하는 금융권 회사들은 특성 상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믿을만한 것은 학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금융회사의 기대는 위기에 닦치면 비극이 된다. 학벌 좋은 사람들이 일반사람들에 비해 취약한 아킬레스 근은 위기에 처했을 때 드러난다. 답이 정해지지 않은 위기에 직면했을 때 학벌 좋은 사람들은 더 큰 맨붕을 경험한다. 특히 위기 상황 속에서 학벌이 좋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모여있을 때는 더 큰 재앙을 자초한다. 리만사태 등 세계 금융위기의 단초를 추적해보면 이런 금융권의 학벌 중심의 집단사고가 원인이다.

    학교가 답안을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라면 어떤 곳인가? 학교는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세상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개념화 능력과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프로토타입 기술을 훈련시켜 주는 최소한의 이원학습을 해낼 수 있는 장소여야한다.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실수를 과감하게 할 수 있는 연습장 같은 곳이 학교이다. 우리는 연습장에 연습할 때 실수할 것을 두려워하며 하지 않는다. 실수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학생들이 무한히 실수를 통해 자신의 개념과 기술 능력을 통해 문제해결력을 신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 학교다. 졸업이라는 유예기간을 정해 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이야기를 본인 수업의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학생들에게 들려주었을 때 한 학생이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오른쪽 팔꿈치에 작은 상처가 있어요. 어렸을 적 가파른 내리막길을 친구들과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내려가다가 생긴 것입니다.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멈추려면 일부러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넘어지는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그것을 선택하지 못해서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팔꿈치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모습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비슷한 실수를 하며 살아가네요. 실수 할 용기가 없어서, 당장의 안락함을 추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내리막길에서 계속 내려 보낼 때가 많았습니다]

    세상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이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과거를 답습한다면 누구나 반드시 실수를 하게 되어 있는 운명이다. 실수가 상수가 된 세상에서 우리가 과거의 잘못을 용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의 기억을 되돌림에 의해서나 과거에 대한 망각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더 낫게 극복할 수 있는 해결력을 증명해 보임을 통해서이다.

    세상이 바뀌면 실수할 수 밖에 없는 과거의 미숙한 나는 미래의 다 나은 나를 향한 개념화 능력을 통해서만 용서 받을 수 있다. 나의 성장의 역사는 실수하는 과거와 용서하는 미래간의 파트너십이 작동되는 삼원학습이라는 현재의 실험공간을 만든 역사이다. 이 삼원학습의 파트너십이 끊어지는 순간 우리는 실수하고 이것을 숨기고 들키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비난하는 자기방호기제만을 배운다. 남들을 비난하는 습관은 학습이 일원학습에 멈춰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해결력의 신장을 통해 실수를 용서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학생들에게 최고 수준을 향한 자발적 학습과 학습에 대한 자신감을 유발한다.

    미래는 답이 정해지지 않은 시간이고 학교의 본질은 학생들에게 이런 미래에 대한 문제해결력을 습득하는 연습공간이다. 학교는 사회에 나가기 전에 마음대로 실수할 수 있는 연습장을 제공해야 한다. 학교의 본질이 연습장이라면 학생들에 대한 시험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 정해진 답을 외워서 실수하지 않고 답안지에 옮기는 능력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연습장에서 자신 있게 실수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지 이 용기를 가지고 실제 실수를 통해 답이 없는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개념과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학교는 물고기를 잡아 주는 장소가 아니라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새로운 물고기를 잡는 기술과 개념을 스스로 생산하는 법을 배우는 삼원학습의 실험실이어야 한다.

    대학에 몸담고 있지만 대학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학교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변화에 무관심한 섬처럼 느껴진다. 잠재력이 우수한 젊은이들을 데려다 둔재로 다시 박아내는 공장처럼 느껴진다.

    윤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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