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을 직조하다: 소통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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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을 직조하다
소통이란?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졸업도반들이 참여하는 <소크라테스와 책읽기>라는 독서클럽(교장 손가연)이 있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독서클럽들은 책을 읽고 이 책의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잘 가르치는 수준에 도달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처럼 보였다. 책을 읽고 다 이해하고 이것을 가르칠 수준이 되었다고 자신의 삶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런 방식의 삼인칭 독서는 삶의 공복을 채워지지 못하고 헛배만 부르게 한다.
한 때 인문학 열풍이 거세졌다가 사그라진 이유도 비슷하다. 자신 삶을 일인칭으로 만드는 채굴에 신경을 쓰기보다 인문학을 이해해서 지식을 자랑하려는 삼인칭 독서에 더 매진했기 때문이다. 인문학 열풍은 잘못 설정된 목적함수 때문에 아무런 세상에 변화도 만들지 못하고 사그러졌다. 인문학을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았지만 "애플은 인문학과 기술이 씨줄과 날줄이라는 맥락으로 새롭게 직조되어 만들어졌다"는 스티브 잡스의 주장의 본질을 이해한 사람들은 없었다.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독서클럽에서는 이런 삼인칭 방식의 독서를 철저히 지양한다. 대신 자신의 삶의 씨줄을 직접 채굴하는 일인칭 독서방식을 택한다. 채굴의 광산은 고전반열에 오른 원전이다. 소크라테스 독서클럽에서는 시간의 검증을 통과해서 읽히는 고전의 원전만을 읽는다. 이 원전을 도반들과 같이 독해해가며 자신 삶을 일인칭삶으로 만들어줄 씨줄을 채굴한다. 도반들은 남들이 해석해놓은 디저트 서적으로 자신을 당뇨병 환자로 만드는 독서를 경계한다. 디저트 서적이 아닌 원전을 통곡물로 소화시켜가며 자신만의 담즙으로 소화시켜 자신의 씨줄을 찾아낸다.
자신의 경계를 넘어 남들과 관계를 맺어야 생성되는 삶의 본질은 소통이다. 소통이란 남들이 제시한 스토리를 날줄로 삼아 자신의 스토리를 씨줄로 끼워넣는 행위다. 씨줄과 날줄이 새로운 공동의 스토리를 피륙해내는 행동이다. 자신만의 씨줄이 없는 사람들은 소통에 공동의 주체가 되어 참여할 수 없다. 남들의 이야기를 그냥 퍼나르는 아바타일 뿐이다. 소통은 자신과 상대를 자신들 경계의 밖으로 끌어내 삶을 새롭게 소생시키는 행동인데 상대의 경계에 갇히거나 내 경계에 다시 갇히는 행위로 삶을 소통해 살려낼 수 없다.
우리나라 미술 작가 중에는 하태임 작가가 이런 소통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통은 남의 스토리와 자신의 스토리를 서로 직조하고 피륙해서 더 높은 곳에 새로운 맥락의 운동장을 만드는 행동이다. 이 맥락의 운동장에 공동의 주인공이 되는 일이다. 진정한 소통은 서로 만들어낸 이야기를 새 음악으로 삼아서 서로에게 주인공이 되어 뜌엣을 하거나 군무로 춤주는 행위이다. 소통의 문제는 주체가 주체의 역할로 참여할 수 없음에서 생긴다.
자신이 채굴해낸 씨줄이 없는 사람들이 새로운 맥락을 직조해내는 소통에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지금까지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소크라테스 클럽에서 씨줄 채굴에 성공한 도반들은 소통의 방식들이 달라지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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